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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벽-조유(趙瑜, 1346~1428) 1346년(忠穆 2)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옥천(玉川)호는 건곡(虔谷).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 원길(元吉)의 차남이다. 진사로 문과에 급제 중현대부 전농시 부정의 관직에 올랐으며 고려가 망하고 조선건국 후 고려왕조에 절의를 지킨 두문동 72현중 한분임. 태종이 여러차례 벼슬을 권유 불렀으나 모두 사의하였음. 어버이상을 당하여 3년 여묘살이를 하여 효자로 칭송되었으며, 1428년에 돌아가실 때 세종대왕께서 효자전부정조유지여(孝子前副正趙瑜之閭)란 정여를 하사 1706년(숙종 32)에 세워진 겸천서원(謙川書院)에 주벽으로 배향.
2)박중림(朴仲林, ?~1456) 본관은 순천 호는 한석당(閑碩堂). 1423년 식년문과에, 1427년 문과중시에 급재, 세종때 집헌전 학자, 공조참판. 이조판서. 1456년 아들 팽년과 함께 단종을 복위하려다 사형됨. 3)김종서(金宗瑞, 1390~1453) 세종과 단종 때의 재상이자 6진을 개척한 명장으로 자는 국경(國卿)이고 호는 절재(節齋), 본관 순천(順天). 1405년(태종 5년)문과에 급제 1451년 우의정에 오르고, 1452년 세종실록의 총재관을 거쳐 고려사절요의 편찬을 감수하여 간행. 단종 즉위후 어린왕을 보위하다 1453년에 수양대군에게 피살당했으며 1746년(영조 22)에 복관(復官) 충익(忠翼)의 시호 받음. 4)박팽년(朴彭年, 1417~1456) 조선의 문신 겸 학자로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자는 인수, 호는 취금헌((醉琴軒), 본관은 순천이다. 1434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집현전에 들어가 학문을 닦고 고제(古制)를 연구하는데 힘을 쏟았다. 손자 박일산이 생존하여 사육신 중 하위지 가와 함께 후손이 전한다. 5)조사문(趙斯文, 1398~1483) 자는 도종이고 호는 삼성이며 본관은 전부정공 조유의 첫째 아들이다. 세조때 벼슬은 수위부위좌군사정을 지냈다. 손자 침(琛)의 추은으로 통정대부이조참의 겸 경영참찬관에 추증되었고 1456년(세조 병자년)에 사육신과 함께 단종복위운동에 연루되어 동생 절민공 부자는 앞에 화를 당하고 참의공은 뒤에 전주에서 처형 당하고 시체는 마근대미산에 묻혔다고 하나 계엄하라 실전되어 유의장 하였고 1996년 가을에 유림들의 발의로 겸천서원에 추배되었다. 6)조숭문(趙崇文, ?~1456) 조선 초기의 무신. 본관은 옥천(玉川). 자는 무백(武伯). 호는 죽촌(竹村). 부정 유 둘째 아들이며 세조때 사육신 성삼문의 고모부이기도 하였다. 세종때에 무과에 급제하고, 1456년(세조 2) 병마절도사 재직중에 성삼문(成三問) 등의 단종복위사건에 연루되어 아들 철산(哲山)과 함께 죽임을 당하였다. 1779년(정조 3) 경연관(經筵官) 송덕상(宋德相)의 상계에 의하여 구기(舊基)인 전라남도 승주군 주암면 죽림리에 정려가 건립되고, 1791년에 단종묘정에 배향되었다. 또 구기에 건립된 겸천서원(謙川書院)과 동학사(東鶴寺) 내에 건립된 숙모전(肅慕殿)에도 배향되었으며, 뒤에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절민(節愍)이다. 7)조철산(趙哲山, ?~1456) 조숭문의 아들로서, 자는 진경(鎭卿), 호는 귀천(龜川)이다. 1455년(세조 1) 단종복위 운동을 벌였으나 밀고되어 사형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