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학자인 배숙(裵璹)의 학문과 유덕을 기리는 배향소이다. 이 서원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처음 매곡동에 세워졌었는데 대원군 때인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이곳에 이건 된 것으로 추측된다.
1)주벽-배숙(裵璹, 1516∼1589)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수옥(壽玉), 호는 매곡(梅谷). 성주 금원리(琴院里)에서 출생. 종사랑(從仕郎) 경보(景輔)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한양조씨(漢陽趙氏)로 경화(慶華)의 딸이다. 이언적(李彦迪)의 문인이다. 1546년(명종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 유생이 되었다. 보우(普雨)가 문정왕후(文定王后)의 총애를 받아 궁전을 드나들며 포교하자 이를 탄핵하는 <척요승보우소 斥妖僧普雨疏>를 올렸다. 스승인 이언적이 죽자 심상(心喪) 3년을 치렀다. 1564년(명종 19) 이황(李滉)의 추천으로 승평교수(昇平敎授)가 되어 후배의 육성에 힘썼다. 향리로 물러난 뒤에는 정사를 지어 ≪심경 心經≫과 ≪근사록 近思錄≫을 중심으로 후생에게 강론하였고, ‘성정수제(誠正修齊)’의 넉자를 써서 걸어놓고 성의·정심·수신·제가를 학문의 기본으로 삼았다. 스승의 유훈을 이어받아 심성(心性)의 학문과 천명(天命)의 설을 구심점으로 인간의 도리를 강구하였다. 저서로 ≪매곡집≫ 4권이 있다.
외삼문인 척강문(陟降門)을 들어서면 ‘미강서원’ 현판이 걸린 강당이 나오는데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외삼문의 왼쪽 측면에 문이 따로 있는 것이 특징이며, 사당으로는 명덕사(明德祠)가 있어 배숙(裵璹)을 배향하고 2월과 8월 중정(中丁)일에 향사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