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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해리 577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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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1년(정조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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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8월 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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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신(閔 伸) 민보창(閔甫昌) 민보해(閔甫諧) 민보흥(閔甫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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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산서원은 1452년(단종 즉위) 이조판서로 재임하다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순절한 충정공 민신(閔伸)과 그의 아들 민보창(閔甫昌), 민보해(閔甫諧), 민보흥(閔甫興)의 충절을 추모하고자 건립한 사우(祠宇)이다. 미산서원에 배향된 민신은 계유정난으로 순절된 후 1781년(정조 5년) 후손 민치상이 임금께 올린 상소문에 의해 329년 만에 신원이 회복됨과 동시에 전남 해남군 마산면 양지리에 충정사(忠貞祠)를 창건하여 배향하여오다, 1800년(정조 24년) 충정사를 전남 해남군 해남읍 해리 577번지로 이건하여 신실, 동재, 서재, 내․외삼문을 증축함과 동시에 미산서원(眉山書院)이라 개칭(改稱)하여 충신 4부자를 향사하였다. 미산서원이라 개칭한 이후 후손 및 사림(士林)들에 의해 임금의 사액(賜額)을 받으려고 여러 차례 상소문을 올리게 되자, 당시 조정(朝廷)에서는 임금의 명(命)을 받들어 지역 유림들에게 조정으로 올라 올 것을 하명(下命)하였으나 거리가 멀어 하명한 날에 도착하지 못하여 임금으로부터 사액을 받지 못하였다. 1803년(순조 3년)에는 청재 박심문과 배향해오다 1911년 청재 박심문은 ‘죽음사’에 분단 향사하였다. 1868년(고종 5년)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헐어내어 매안(埋安)하였다가 1901년(광무 5년) 서원 복설령이 내려졌으나 사우(祠宇)를 중건하지 못하고 선단향사하면서 미산원(眉山院)으로 개칭하여 오다, 1982년 본향(本鄕) 사림들과 후손들의 발의로 복원에 착수하여 1983~1984년간 신실, 강당, 내․외삼문을 복원하여 충정공 민신과 삼자(민보창, 민보해, 민보흥)를 예전과 같이 봉안하여 미산서원의 옛 현판을 다시 걸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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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돈암(遯菴) 민신(閔伸, ?∼1453) 조선조 학자이며 문신이다. 본관은 여흥(驪興), 호는 돈암(遯菴)이며 시호는 충정공(忠貞公)이다. 아버지는 장령, 시윤을 지낸 불해(不害)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이다. 태조조에 대사헌, 관찰사, 집현전학사 및 한성판윤을 지낸 민개(閔開)의 손자. 민신은 1423(세종 5년) 문과 급제 후 1431년(세종 13년) 이조정랑의 벼슬을 시작으로 대사헌, 경기도관찰사, 형조판서, 병조판서를 지냈으며 문종조 병조판서를 역임하다가 단종이 즉위하자, 이조판서로 재직하면서 어린 단종을 정성껏 보필하였다. 그러나 당시 수양대군(세조)을 비롯한 왕권을 찬탈 음모를 꿈꾸던 세력들로부터 수차례 회유와 압력을 받았으나 단호히 거절하였으며 특히 수양대군이 명나라 사신으로 갈 때 동행할 것을 권유받았으나 병(病)을 핑계로 반역에 동참하지 않고 끝까지 충절을 지키다가 현릉(문종릉) 비석소(碑石所)에서 역사(役事)를 감독하던 중, 단종원년 계유(1453년 10월 10일) 삼군진무 서조(徐遭)에게 무참히 피살되었다. 그는 후손 민치상이 올린 상소문에 의해 1781년(정조 5년) 329년 만에 복관된 후 1782년(정조 6년)에는 ‘충정’ 이라는 시호를 받았고 1787년(정조 11년)에는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2)민보창(閔甫昌, ?~1453)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단종조 중추부사로 재직하였다. 아버지는 세종조 형조 및 병조판서, 문종조 병조판서, 단종조 이조판서를 지내다가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반역으로 몰려 순절한 후 1787년(정조 11년) 영의정으로 추증된 민신(閔伸)이며 어머니는 정경부인 단양우씨이다.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아버지 민신, 동생(민보해, 민보흥)과 함께 순절하였으며 아들 중건(仲騫)은 당시 7세 어린나이로 노복(奴僕)에 의해 당시 진도군수 외숙 김종(金淙) 가(家)에 숨겨져 성장하였다. 미산서원(眉山書院)에는 아버지 민신, 동생 민보해, 민보흥과 함께 배향되었다. 3)민보해(閔甫諧, ?~1453)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아버지는 단종조 이조판서를 지낸 민신, 어머니는 정경부인 단양우씨이며 경주인(慶州人) 충민공(忠愍公)이명민(李命敏)의 사위이다.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아버지 민신, 맏형 민보창, 동생 민보흥과 함께 순절하였으며 미산서원(眉山書院)에는 아버지 민신, 맏형 민보창, 동생 민보흥과 함께 배향되었다. 4)민보흥(閔甫興)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아버지는 단종조 이조판서를 지낸 민신, 어머니는 정경부인 단양우씨이다.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아버지 민신, 맏형 민보창, 중형 민보해와 함께 순절하였으며 미산서원(眉山書院)에는 아버지 민신, 맏형 민보창, 중형 민보해와 함께 배향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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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의 건물로는 외삼문, 내삼문, 강당, 신실 등이 있다. 사우에는 민신을 주벽(主壁)으로 하여 좌우에 충신 삼자(민보창, 민보해, 민보흥)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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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산서원지를 비롯하여 정조임금이 내리 민신의 ‘충정공’ 시호 및 ‘영의정’ 추증 교지, 심원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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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여흥민씨대종회 홈페이지 http://www.minssi.net. 신종우의 인명사전 http://www.shinjongwoo.co.kr/ 한국민족문화백과사전
사진-여흥민씨대종회 홈페이지http://www.minss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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