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주벽-정수홍(鄭守弘, 생몰년 미상)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의백(毅伯), 호는 풍천(楓川). 예의판서 가종(可宗)의 아들이다. 생원시를 거쳐1390년(공양왕 2) 예부시(禮部試)에 합격, 권근(權近)·하륜(河崙)·성석린(成石璘) 등과 교유하였다. 1408년(태종 8) 사헌부집의 재직 중에 민무질(閔無疾)의 당여로 지목된 하륜을 탄핵하고 무단히 하륜의 집에 사헌부관리를 보내어 수직(守直)한 사건으로 나주에 유배되고, 1409년 외방종편(外方從便), 이듬해 복직되었다. 1418년(세종 즉위년) 사간원우사간·좌사간, 이듬해 8월 예조참의, 같은 해 12월 판나주목사로 부임하여 임기를 마친 뒤 퇴직하였다. 덕행과 문장으로 명망이 있었다. 전주의 학천사(鶴川祠)에 제향되었다. 2)정곤(鄭坤) 정곤은 호를 복재(復齋)라 하였으며, 목은 이색(牧隱 李穡)의 문인으로 문장과 덕행에 뛰어났다. 대사성(大司成)을 역임한 뒤 연촌 최덕지(烟村 崔德之)와 함께 유교 경전의 내용을 토론하면서 세상을 마쳤다. 3)정달서(鄭達恕) 호(號)는 석린당(石隣堂). 1636년(인조14)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의병(義兵)을 일으켜 공(功)을 세웠다. 4)정임(鄭任) 조선초기의 문신이다. 호는 둔화(遯華), 본관은 동래, 수홍의 아들이다. 단종 대 사마에 이르렀고,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벼슬을 버렸다. 육신의 참화(慘禍)를 듣고 장화에 은거하였다. 5)정사협(鄭斯鋏) 조선후기의 효자이며 호는 황계(璜溪), 정달서(鄭達恕)의 후예이다. 빈한한 생계에서 노부모 공양에 지극하여 주위의 칭송이 자자했다. 조정에서 효자 정려가 내려지고 영능참봉의 직(職)을 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