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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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남산서원(南山書院)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묘라리 440-1
   유지화(柳志和) 남궁석제(南宮石齊)
   1574년(선조 7)
   
   2월 중정(中丁)
   
1574년(선조 7)에 창건하였다가 1890년(고종 7)에 철폐되었던 것을 1970년 이 지방에서 유교를 공부하는 학자들이 다시 지었다. 이곳에는 병자호란 당시 척화파였던 유지화(柳志和)를 모시고 있었으나 그 뒤 순조 때에 남궁석제(南宮石齊)를 추가 배향하였다.

1)주벽-유지화(柳志和, 1599∼1680)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후성(後聖), 호는 반구당(伴鷗堂).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희춘(喜春)이고, 아버지는 사복시주부 광복(光復)이며, 어머니는 승지 남치상(南致祥)의 딸이다.
12세에 어머니를 여의었으나 계모를 지성으로 섬겨 이웃의 칭찬을 받았다. 1633년(인조 11) 효행으로 천거되어 창릉참봉(昌陵參奉)에 제수되었으며, 선공감봉사(繕工監奉事)·상의원주부(尙衣院主簿) 등을 역임하였다. 1636년 근친하는 일로 귀향하였다가, 병자호란을 당하자 위험을 무릅쓰고 남한산성에 호종하고 척화론을 주장하였다. 이어 통진·회덕 현감 등에 제수되었는데, 가는 곳마다 선정을 베풀어 송덕비가 세워졌다.
그 뒤 계모가 세상을 떠나자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문에 ‘반구당’이라는 편액을 걸고 당대의 명류들과 경전을 토론하며 만년을 지냈다. 1680년(숙종 6) 호종공신(扈從功臣)에 추록되고 통정대부에 승서(陞敍)되었으나 조정의 명이 하달되기 전에 죽었다. 효자의 정문이 세워졌다. 김제 남산서원(南山書院)에 제향되었다.
 
2)남궁석제(南宮石齊)
자는 자거(子居) 호는 동강(東岡) 본관은 함열(咸悅)이다. 찬(璨)의 후예이며 사재첨정(司宰僉正) 우(楀)의 아들로 천자(天姿)가 영오(穎悟)하여 경술(經術)에 능하였다. 1669년 현종(顯宗) 10년에 사마(司馬)가 되었고 물러나와 김제 만경(萬頃) 옥산(玉山)에 우거(寓居)하며 학문에 힘쓰고 후진을 양성했다. 효와 학문으로 널리 알려 졌으며 여러 차례 조정에서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다. 송시열과 송준길이 그를 칭송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신문(神門), 4칸의 영모재(永慕齋), 경의문(景義門) 등이 있다. 사우의 중앙에는 유지화와 남궁석제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영모재는 강당으로서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회합, 학문의 토론장소로 사용된다.

참고-김제문화원, ‘김제의 숨결’ 김제군편, 199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