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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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효산서원(孝山書院)
   경상남도 산청군 차황면 철수리 273
   주벽 - 김자수(金自粹)연향 - 김영유(金永濡)배향 - 김상예(金商禮)
   1887년 4월
   
   양 5월 5일(어린이날)
   
이곳은 김상례(金商禮)의 유적지(遺蹟址)이다. 당시 홍경래난(洪景來亂)의 여파로 속세를 떠나 산골에서 쓰라린 고통과 험운(險韻)을 겪어 가면서도 어버이를 섬기며 숭조 의념이 남 달라, 전대(前代)의 관망(冠網)을 매듭짓고 자연과 풍영(風詠)을 벗삼아 초야에 묻혀 살면서 벼슬에 나가지 않는 순결한 위인(偉人)이 살아온 곳이다. 이때 잉승(仍承)된 사문(斯文)으로, 언제나 변함없는 가범(家範)과 예절(禮節)이 완연(完然)하고 정민(貞敏)함에 금세(今世)에 인감(人鑑)이 되는 본손 세환(世煥)이 유림의 후원(後援)에 힘입어 사원(祠院)을 준성(竣成)하여 삼현(三賢)을 모시고 향예(享禮)하고 있다. 상촌선생(桑村先生)은 누조(累祖)에 걸쳐, 안동옥계(安東玉溪) 인계타양(仁溪陀陽) 화산서원(花山書院) 영동각계에 충효사(忠孝祠) 초강서원(草江書院) 그리고, 보은병산서원(報恩屛山書院) 등지에서 봉향 하였는데 고종(高宗) 때 철원령(撤院令)에 의해 훼철당하고 지금 충북음성에 지천서원(知川書院) 안동에 타양서원(陀陽書院)과 충북 이류면에 팔봉서원(八峰書院)에 향예하고 있으나 선생의 태생(胎生)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고역(故域)에는 우모지소(寓慕之所)가 없어 본손으로서 고민만 거듭되는 세월을 보내다가 당세(當世)에 이르러 교남일우(嶠南一隅)인 산청군 차황면 철수리에 창건(創建)하여 봉사하고 있다.

1)주벽- 김자수(金自粹)
자(字) 순중(純衆) 호는 상촌(桑村) 본관 경주(慶州)
고려충정왕(高麗忠定王) 3년(1351) 신묘생
공민왕(恭愍王) 19년(1370) 19세에 생원합격 11월경 성균관에 입사(入舍)
20년(1371) 어머님 병환으로 귀향(歸鄕) 병구환을 지극히 함
동년. 어머님 별세후 24삭간(朔間) 시묘(侍墓)
동년(1374) 문과장원
동년(1374) 12월 문과급제 윤허를 받고 덕녕부주부(德寧府注簿)
우왕(隅王) 원년(1375)에 정언(正言)
동년(1375) 11월 정언사건으로 유배
2년(1376) 복귀되어 전부사령
4년(1378) 판사재시사(判司宰寺事)
동년(1378) 좨주(祭酒)
14년(1388) 충청도도관찰사
공양왕(恭讓王) 원년(1390) 대사성겸 세자, 좌보덕 대상소
2년(1391) 사임상소(辭任上疏)
동년(1391)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3년(1392) 좌상시(左常侍)
4년(1393) 상소(上疏)
동년(1393) 7월에 고려가 망한 후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셨다가 나와 광주추령(廣州秋嶺)으로 거처를 옮기셨다가 다시 고향인 안동에 은거(隱居)
조선조 태조 이성계가 왕위(王位)에 있을 때 공을 헌장(憲長)으로 불렀으나 불청(不聽)
태조(太祖) 11년(1411) 9월에 강릉대도호부사(江陵大都護府使)로 임명되었으나 역시 불취(不就)
태종(太宗) 13년(1413) 엄지(嚴旨)로 형조판서에 불렀으나, 광주추령(廣州秋嶺)에서 유시(遺詩)를 남기고 자결(自決)하심.
 
[절명사](絶命詞) :平生忠孝意今日誰有知
▷한평생충효의 뜻을 오늘날에 누가 알리있으리오 一死吾休恨九原誰有知
▷이한몸 죽어 쉬운한은 황천에서 응당 알바있으리
 
2)연향 - 김영유(金永濡)
자(字) 택부(澤夫) 호는 퇴재(退齋) 시 공평(諡 恭平) 관(貫) 경주(慶州) 이는 상촌선생의 손자이다.
세종(世宗) 29년 정묘(丁卯)에 별시(別試) 문과에 올라 대사성, 대사헌, 이조참판, 삼남해, 사도방백, 개성유수(開城留守), 자헌대부(資憲大夫),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고 신묘 기록에 좌리원종일등공신(佐理原從一等功臣)으로 기로사(耆老社)에 드셨다.
 
3)배향 - 김상례(金商禮)
자(字) 희윤(熙潤) 호는 삼묵재(三黙齋)
순조(純祖)때 시관(始冠)하여 은거하면서 자신을 지키며 한언(罕言)과 근신예도(謹身禮度)는 언제나 군자(君子)의 정의로운 교화를 초지일관(初志一貫)타가 생애(生涯)를 다한 현사(賢士)이다. 이 셋 어진이의 공덕(功德)을 기리기 위함이요. 특히 조선 말기로부터 서구문화의 새로운 교육제도가 생겨나면서부터 서원의 기능이 약화되고 향사만 드리는 곳으로 변해 가는 것을 아쉽게 생각한 나머지 경상대학한문과교수(慶尙大學漢文科敎授)들의 더할 수 없는 협조로 전국 한문학과 수재(秀才)들을 선발(選拔)하여 약 5년간 동하기(冬夏期) 방학을 이용하여 훈도(訓導)에 매진타가 운영사정에 의해 중단하고, 그 뒤를 이어 한국고전번역원(韓國古典飜譯院)에서 한해 2회에 방학기를 정하여 후학육성에 총력(總力)을 하는 바 옛 서원의 구실을 하고 있다.

1) 경모사(景慕祠) 3간
2) 근사문(近思門) 3간
3) 효산서원(孝山書院) 4간
4) 상덕문(商德門) 3간
5) 대월루(對月樓) 3간
6) 삼묵재(三黙齋) 4간
7) 내성문(內省門) 단간
8) 춘강정사(春岡精舍)
9) 경고당(鏡古堂) 콘크리트 20평
10) 복원문(復元門) 3간
11) 주사(廚舍) 3간
12) 무첨산방(無忝山房) 2층양옥 40평
13) 허심원(虛心園) 약 500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