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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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동강서원(東岡書院)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유금리 148-1
   손중돈(孫仲暾)
   1695년(숙종 21)
   
   2월, 8월 하정(下丁)
   경상북도기념물 제114호(1996.01.20지정)
1695년(숙종 2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손중돈(孫仲暾)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훼철 직후인 1870년에 설단(設壇)하여 단향(壇享)으로 향사를 지내오다가, 1925년에 활원재(活源齋), 1960년에 묘우(廟宇)·강당 등을 복원하였다. 1980년에 경상북도에서 수복(修復)하였다. 1986년에 동재·서재·신도비각을, 1999년에 탁청루를 복원하였다. 매년 2월 하정(下丁 : 세번째 丁日)과 9월 하정에 향사를 지낸다.

1)손중돈(孫仲暾, 1463~1529)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대발(大發), 호는 우재(愚齋). 등(登)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 병조참판 사성(士晟)이고, 아버지는 계천군(鷄川君) 소(昭)이며, 어머니는 유복하(柳復河)의 딸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1482년(성종 13) 사마시에 합격하고 1489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봉교(藝文館奉敎)를 거쳐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역임하였다. 1497년(연산군 3) 양산군수, 이어 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사복시정(司僕寺正)으로서 간관(諫官)들이 거의 다 쫓겨날 때 파직당하였다.
1506년 중종반정 직후에 상주목사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어 1509년(중종 4)에는 표리(表裡) 1습(襲)을 하사받고 좌승지로 승진하였다. 이어 공조·예조참판을 역임하다가 1517년에는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뒤에 공조판서·이조판서·세자시강원빈객(世子侍講院賓客)을 지낸 뒤 도승지를 세번, 대사간을 네번 지냈으며, 경상도·전라도·충청도·함경도의 관찰사를 지내고, 우참찬에 이르렀다. 중종 때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경주의 동강서원(東江書院), 상주의 속수서원(涑水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경절(景節)이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숭덕사(崇德祠), 신문(神門), 5칸의 순교당(諄敎堂), 5칸의 활원재, 유도문(由道門)·전사청(典祀廳), 4칸의 서고, 9칸의 포사(亮舍), 협문(夾門) 등이 있다.
 
1)사우
사우인 숭덕사에는 손중돈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앞면 3칸이고 옆면 2칸의 통칸으로 풍판을 단 맞배집이다. 공포는 이익공 구조이며 가구는 3량가이다. 자연석 기단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원기둥을 올렸다. 사당의 주위는 기와를 얹은 토석담으로 둘렀다.
 
2)강당
순교당은 서원의 강당으로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가운데 3칸의 대청을, 양 옆에 각 1칸씩의 온돌방을 두고 앞에 툇마루를 두었다. 현재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다. 기단 앞 중앙에는 자정에 제사를 지낼 때 관솔불을 켜놓는 대석(臺石)이 있다.
 
3)동·서재
동재는 궁리재(窮理齋), 서재는 진성재(盡性齋)라 현액되어 있으며 각각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집이다. 공포는 민도리이며 가구는 3량가이다.
4)탁청루
서원으로의 진입공간으로 사용되는 문루인 탁청루(濯淸樓)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집이다. 외부의 현판은 ‘유도문(由道門)’이라 되어 있으며 누하진입을 하도록 되어있다.
 
4)기타
고직사 영역에는 고직사, 전사청, 활원재(活源齋), 창고가 있다.

유물로는 중종이 하사한 서적과 역대 군·시·도상 2권, 김생(金生) 등의 서법첩, 교지(敎旨) 300여매가 있다.

참고-문화재청
경주시 문화관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