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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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작성일 : 12-10-25 10:28
서원 바로 알기⑨ - 창녕 勿溪서원과 파주 坡山書院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681  


牛溪 成渾선생을 모신 서원
- 창녕 勿溪서원과 파주 坡山書院 -

물계서원은 우계 성혼을 비롯해 창녕 성씨 유현 21명을 모시고 있는 성씨 가문의 서원이다. 흔치 않은 사례로 국내 유일의 문중 서원이다. 처음에는 창녕군 대지면 왕산에 영효사(影孝祠)로 건립되어 효행으로 드러난 시중공(侍中公) 성송국(成松國) 선생을 향사(享祠)하여 온 것이 물계서원(勿溪書院)의 효시(嚆矢)이다. 숙종 38년(1712)에 사당을 맥산의 북쪽 물계위에 건축하였으며 영조 5년(1729)에 많은 선비들이 건의하여 사당(祠堂)을 서원(書院)으로 만든 다음 물계서원(勿溪書院)이라 호칭하였다. 대원군(大院君)에 의해 1871년(고종 8)에 철훼되었으나 1989년 11월 기공하여 1995년 5월에 복원되었다. 서원 자리에는 원정비(院庭碑)가 비각 속에 지금도 남아있는데 비의 비문은 판부사 이복원이 지었고 동지중추 조윤형이 썼으며 1790년(정조 14)에 세웠다. 현재 우계(牛溪) 성혼의 문집책판을 보관하고 있다. 가로 22cm, 세로 49cm로 284장으로 되어 있다.
우계문집은 원집 6권과 속집 6권으로 1621년(광해군 13)에 성문준(成文濬)·김집(金集)·안방권 등 우계문인들이 <우계집>을 발간하였는데, 이것이 우계집의 원집이었다. 우계속집은 숙종 8년에 공주감영에서 간행되었고 중간본은 1809년(순조 9) 성금주가 원집과 속집을 합쳐서 밀양에서 간행하였는데, 우계원집이 광해군조에 만들어진 탓에 당시 집권당이 꺼려하는 부분은 많이 삭제되었으므로 다시 속집이 나오게 되었다.
이 외에 서원에는 두문동선생실기책판 33장, 창녕성씨문행열전책판 70장, 성씨중효행록책판 46장, 창녕성씨만력보책판 22장, 창녕성씨기축보책판 189장 등 조선시대 목판 총 360장이 부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때 물계서원이 훼철됨에 따라 맥산재로 옮겨 보관하였다가 1989년 물계서원을 복원하고 1996년 11월9일 서원의 경내 책판고를 복원하여 책판을 다시 이곳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파산서원은 조선중기 학자인 청송(聽松) 성수침(成守琛·1493∼1564)과 그의 아들 우계(牛溪) 성혼(成渾·1535∼1598), 아우 절효공(節孝公) 성수종(成守琮·1495∼1579) 및 휴암(休庵) 백인걸(白仁傑·1497∼1579) 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을 올리며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선조(宣祖) 원년(1568) 율곡 이이(栗谷 李珥), 휴암 백인걸 등 파주지역 유생들의 주창으로 창건되었고, 효종(孝宗) 원년(1650) 사액(賜額)을 받았다. 파산서원은 대원군(大院君)의 서원철폐시에도 존속되었던 47개 서원중의 하나로 중요시되던 곳이다.
서원건물은 임진왜란때 불타 없어진 것을 그 뒤 다시 복구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다시 불타 1966년 서원 본전(本殿)인 사당만 복원하였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전면칸은 퇴칸(退間)으로 개방되어 있고 각 칸에는 2분합의 띠살문을 달아 놓았다. 지붕은 맞배지붕에 겹처마를 이루고 있다.
사당은 이벌대의 기단위에 전돌을 깔고 원형의 초석과 원기둥으로 되어 있다. 우계가 이곳에 머물고 율곡이 율곡리에 낙향하였을 때 사단칠정론, 인성론에 대하여 30여 차례 글을 주고받으며 학문을 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