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강천 이예(薑川李芮) 고려 때의 인물로 마음의 바탕이 충효를 갖추었고 학문과 품행이 온전하였다. 서기1351년에 문과에 등과 하였고, 벼슬은 판도판서에 이르렀으며 합천 인으로 호는 강천 시는 문질이다.
2) 달암 이원달(達巖李元達)
강천 이예의 둘째 아들로 호가 달암이다. 고려조 때 문과에 올랐고, 벼슬은 병조참판에 이르렀다. 고려가 망하자 금원산 조담 암석 위에서 순절하였다.
3) 영계 유환(瀯溪劉懽)
거창 인으로 자는 국노요 호는 영계이다. 서기1337년에 태어나 등 문과하고 여말에 대사헌으로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키면서 금원산에 들어가 은거하다가 생을 마쳤다.
4) 확계 정옥견(蠖溪鄭玉堅)
이조 성종 때의 학자로 자는 부린이고 학계는 선생의 호다. 초계정씨 입안조 생원 정제안의 손으로 서기1450년에 출생하였다. 학문이 깊고 효성이 극진하였으며 행의가 돈독하여 세인의 추천으로 중직대부 사포서별제에 잠시 임하였다가 간사한 권신의 농간질이 거슬려 이내 낙향하였다. 향리 사마리 학담 위에 능허정을 지어 장수지소로 삼고 학문 탐구에 몰두 백가서에 통달하였고, 후진 양성에 힘썼다. 문 헌공께서 안음현감으로 재임할 때 이곳 능허정을 찾아와 자연천리를 즐기며 풍영하고 돌아가 이삼자에게 말하기를 내 오늘날 증점과 더불어 뜻이 있었다고 하였으니 백세에 두 선생의 뜻이 같고 도가 합하였음을 짐작케 된다. 선생은 만년에 불 고대에 오르고 학담과 능허정에 노닐며 소요하다가 서기1526년 9월24일에 향년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니 통훈대부사헌부집의에 추증되었으며 사림들이 선생의 행의를 존모하여 금계서원에 봉향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