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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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고천서원(古川書院)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고천리 245
   김대해(金大海) 김 연(金 演) 최인제(崔仁濟) 정석남(鄭碩男) 이영근(李榮根) 이지암(李之馣) 이일장(李日將) 이득룡(李得龍) 이득린(李得麟) 손응현(孫應睍)
   1705년(숙종 31)
   
   음력 8월 하정(下丁)
   경상북도기념물 제144호(2003.08.14지정)
고천서원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에 의병을 일으켜 자인전투, 영천성 전투등에 참여하여 전공을 세우고 경주성 전투에 참여하였다가 순국했던 영천지역의 의병들을 제향하고 있는 서원으로서 이곳에 배향된 인물은 모두 영천 지역 출신의 중견관료 및 사림으로 인근 지역의 농민들을 이끌고 왜군의 격파에 노력 하였으나 모두 일시에 순국 했다. 1705년(숙종 31)에 사당을 건립하고 1797년(정조 21)에 강당을 건립하였으며 대원군의 훼철령으로 훼철되었으나 1916년 유림이 십충현(十忠賢)을 복향하고 매년 제향을 올리고 있다.

1)김대해(金大海, 1544~1592)
본관은 경주이며 자(字)는 홍도(洪濤), 호(號)는 소곡(召谷), 자양(自養)의 6세손.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최인제(崔仁濟) 등 17의사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여러 고을을 탈환하고 경주(慶州)에 가서 싸우다가 전사했다. 형조 정랑(刑曹正郞)에 추증(追贈)되었다.
 
2)김연(金演, 1552~1592)
조선의 의병장. 본관은 경주이며 자(字)는 언홍(彦洪), 호(號)는 노암(魯庵), 영천출신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카 대해(大海), 유생 최인제(崔仁濟)·이일장(李日將)·정세아(鄭世雅)·정세번(鄭世蕃)·이영근(李榮根) 등과 의병을 일으켜 고향을 수복하고 경주로 진군, 다른 의병들과 연합하여 왜군과 싸우다 전사했다. 벼슬이 추증(追贈) 되고, 밀양(密陽)의 고천서원(古川書院)에 제향(祭享).
 
3)최인제(崔仁濟)
본관은 영천이며, 자는 성부(聖夫) 호는 만정(晩亭), 사간 최원도(崔元道)의 7세손이다. 임진왜란 당시 경주(慶州) 선천진에서 순절한 의사(義士)이며 경북 영천의 고천서원(古川書院)에 제향되었다. 병조정랑에 증직되었다.
 
4)정석남(鄭碩男, 1561~1592)
본관은 연일(延日)이며, 자는 대경(大卿) 호는 충효재(忠孝齋) 이조좌랑 치소(致韶)의 5세손이다. 임진왜란 당시 경주(慶州) 선천진에서 순절한 의사(義士)이며 경북 영천의 고천서원(古川書院)에 제향되었다. 공조정랑에 증직되었다.
 
5)이영근(李榮根)
본관은 영천(永川)이며 자는 경무(景茂), 호는 쌍계(雙溪), 대제학 석지(釋之)의 7세손이다. 임진왜란 당시 경주(慶州) 선천진에서 순절한 의사(義士)이며 행적을 모아 충현록을 간행하였다. 경북 영천의 고천서원(古川書院)에 제향되었으며 한성부 판관에 증직되었다.
6)이지암(李之馣)
본관은 성주(星州)이며, 자는 여욱(汝郁) 호는 사촌(沙村), 고려시중 만년(萬年)의 11세손이다. 임진왜란 당시 경주(慶州) 선천진에서 순절한 의사(義士)이며 그의 행적은 충현록으로 기록되어 간행되었다. 경북 영천의 고천서원(古川書院)에 제향되었으며, 한성부 판관에 증직되었다.
 
7)이일장(李日將)
본관은 벽진(碧珍)이며 자는 성보(誠甫), 호는 남전(藍田), 이조판서 건지(建之) 7세손이다. 임진왜란 당시 경주(慶州) 선천진에서 순절한 의사(義士)이며 그의 행적은 충현록에 기록되어 간행되었다. 의빈부 도사에 증직되었으며, 경북 영천의 고천서원(古川書院)에 제향되었다.
 
8)이득룡(李得龍)
본관은 벽진(碧珍)이며, 자는 사운(士雲), 호는 추계(楸溪)이며 남전공의 장질이다. 임진왜란 당시 경주(慶州) 선천진에서 순절한 의사(義士)이며 그의 행적을 모아 충현록을 간행하였다. 한성판관에 증직되었으며 경북 영천의 고천서원(古川書院)에 제향되었다.
 
9)이득린(李得麟)
본관은 벽진(碧珍)이며, 자는 성상(星祥), 호는 대재(大齋), 이득룡(李得龍)의 동생이다. 임진왜란 당시 경주(慶州) 선천진에서 순절한 의사(義士)이며 그 행적을 모아 충현록을 간행하였다. 한성판관 증직되었으며, 경북 영천의 고천서원(古川書院)에 제향되었다.
 
10)손응현(孫應睍, 1564~1592)
본관은 월성(月城)이며, 자는 자임(子任), 호는 남계(南溪) 판밀직사사 경원(敬源)의 7세손이다. 임진왜란 당시 경주(慶州) 선천진에서 순절한 의사(義士)이며 그의 행적을 모아 충현록을 간행하였다. 의빈부도사에 증직되었으며, 경북 영천의 고천서원(古川書院)에 제향되었다.

고천서원은 앞쪽에 강당을 두고, 뒷면에 제향공간인 순국사(殉國祠)를 둔 전학후묘의 배치이다. 외삼문부터 사당까지 하나의 축에 건물을 배치하였고 고직사는 서원의 우측에 배치되었다. 서원의 건물로는 순국사·강당·내삼문·외삼문·관리사·창고·협문이 있다.

서원 앞에는 10의사 기적비와 비각이 있다.


참고-한국국학진흥원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