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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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소산서원(蘇山書院)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 산12
   하 연(河 演)
    1467년(세조 12)
   
    봄가을
   
조선 세종 때의 명재상 문효공(文孝公) 경재 하연(敬齋 河演)을 향사하는 곳이다. 시흥시 신천동 산12번지, 하연의 묘 옆에 자리 잡고 있다. 하연은 정몽주의 문인으로, 21살에 벼슬에 올라 이조판서, 대제학,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의 벼슬을 두루 거쳤다. 황희(黃喜), 허조(許稠)와 함께 조선 세종 때의 명재상이라 일컬어진다.
하연이 세상을 떠나자 1455년(세조 즉위년) 소산재(蘇山齋)라는 재실을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버렸다. 1467년(세조 12)에 하연의 셋째아들 우명(友明)이 이곳에 영당을 세우고 소산재를 다시 지어 봄가을로 향사를 지냈다. 1963년 지역 유림과 후손들이 쇄락한 소산재를 중건하였고, 1995년 중건하면서 소산서원(蘇山書院)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현재 소산서원은 봄가을로 향사를 지내며, 지역의 전통문화 보존과 주민들의 예절교육을 위해 힘쓰고 있다. 진양하씨(晋陽河氏) 문효공파 종중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1)주벽-하연(河演, 1376~1453)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연량(淵亮), 호는 경재(敬齋)·신희(新稀). 즙(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사헌 윤원(允源)이고, 아버지는 부윤 자종(自宗)이며, 어머니는 정우(鄭寓)의 딸이다. 정몽주(鄭夢周)의 문인이다.
1396년(태조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봉상시녹사를 거쳐, 직예문춘추관수찬관(直藝文春秋館修撰官)이 되고, 이어 집의·동부대언 등을 역임하였다. 이 때 태종은 그가 간관(諫官)으로서 의연한 자세로 일을 말하는 것을 보고 손을 잡고 치하했다 한다.
세종이 즉위하자 지신사(知申事)가 되어 조심스럽게 처사하여 신임을 받아 예조참판·대사헌을 역임하였다. 1423년(세종 5)에는 대사헌으로서 조계종(曹溪宗) 등 불교 7종파를 선(禪)·교(敎) 양종(兩宗), 36본산으로 통합하고, 통합된 사원의 토지와 노비는 국가로 환수하여 채택 받았다.
1425년에 경상도관찰사가 되었고 예조참판을 거쳐, 평안도관찰사가 되었다가 한때 천안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곧 유배에서 풀려 형조·병조의 참판을 거쳐 1431년에 대제학이 되고, 그 뒤 대사헌·형조판서·좌참찬 등 고위관직을 역임하였다.
1437년 의정부에 들어가서는 판이조사로서 공세법(貢稅法 : 연분9등, 전분6등)을 마련했으며, 1442년에는 각품의 행수법(行守法)을 제정하였다. 1445년에 좌찬성이 되어 70세로서 궤장(几杖)을 받았다. 이어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1449년에 영의정이 되었다. 영의정으로 있던 1451년(문종 1)에 문종이 대자암(大慈庵)을 중수하려고 하자, 이에 반대하였다. 의정부에 들어간 지 20여 년 간 문안에 사알(私謁)을 들이지 않았고 법을 잘 지켜 승평수문(昇平守文)의 재상으로 일컬어졌다.
1454년에 문종의 묘정에 배향되고, 숙종 때 진주의 종천서원(宗川書院), 합천의 신천서원(新川書院)에 제향 되었다. 편서로 ≪경상도지리지 慶尙道地理志≫·≪진양연고 晉陽聯藁≫가 있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입정문(入正門)이라고 현판이 걸린 삼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소산서원(蘇山書院)’이라 쓰여진 현판이 있는 강당이 있고, 왼편에는 숭덕재(崇德齋)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