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1. 홈
  2. 로그인
  3. 회원가입

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대포서원(大浦書院)
   경기도 김포시 양촌면 대포리 산 92-1
   눌재 양성지(訥齋 梁誠之)
    1973년
   
   매년 2월 첫째 정일(丁日)
   김포시 지방문화재 향토유적 제1호
1973년 경향(京鄕) 사림(士林)들이 선생의 유덕(遺德)과 명망(名望)을 추모(追慕)하기 위하여 성균관(成均館)으로부터 건국 제1호(建國 第1號)로 액호(額號)를 대포서원(大浦書院)으로 인가(認可)를 받아 선생이 만년(晩年)을 보낸 곳인 김포시(구통진) 양촌면 대포리 산 32번지 선생의 묘하(墓下)에서 사우(祠宇)를 창건했다.
 

1)눌재 양성지(訥齋 梁誠之)
 양성지[梁誠之 태종 15년(1415)∼성종 13년(1482)]. 자는 순부(純夫), 호는 눌재(訥齋)·송파(松坡), 시호는 문양(文襄), 본관은 남원(南原), 증조부 양우(梁祐), 조부 양석륭(梁碩隆), 아버지는 양구주(梁九疇), 외조부는 권담(權湛), 처부는 변상근(邊尙覲)이다.
6세에 독서를 시작하여 9세에 글을 짓고, 세종 23년(1441) 생원·진사 양시 급제, 동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학사를 비롯하여 성종조까지 6조를 섬기면서 세조 10년(1464) 구현시에 장원, 세조 12년(1466) 발영시에 2등, 성종 12년(1481) 문신정시에 장원을 하였으며, 세조 원년(1455) 2등공신, 성종 2년(1471) 좌리공신 3등에 서훈되었고, 공조판서 2회, 대사헌 2회, 지중추부사를 역임하였으며, 순성명량 좌리공신 숭정대부 행 이조판서 판의금부사 지경연사 지춘추관사 성균관사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 봉조하 봉남원군(純誠明亮 佐理功臣 崇政大夫 行 吏曹判書 判義禁府事 知經筵事 知春秋館事 成均館事 弘文館大提學 藝文館大提學 奉朝賀 封南原君)을 지냈다.
선생은 민족주체의식이 강한 사상가로서 단군을 실제의 인물로 숭앙하여 나라를 개국한 시조왕 단군의 숭봉치제를 주청하였고, 부국강병책으로 균역을 확대하여 현역정병 15만명, 예비군 15만명, 조정군 55만명 도합 85만명의 군정을 확보하였으나 균역제도가 성종조에 와서 반발이 야기되면서 해이 붕궤되었다. 선생은 우리의 동국사(東國史)를 배울 것과 우리나라 고유한 풍속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조선조 실학의 종주로서 실학사상의 선구가 되었다.
또한 선생은 무성묘를 세워 배향하고 전사자를 승작 그 가족은 관록으로 부양하는 등 혁신책을 주청하였고, 농지개간과 수리사업 등으로 농지를 확장하여 유수자에게 경작토록하고 농한기에는 무예를 습득 국방의 의무를 도모토록 하였으며, 각 도·군·현에 의료기관을 설치 국민복지 증진을 상주하였다. 그리고 사고의 분리 관리정책으로 임란 병화 시 대부분의 사고가 소실되었으나 전주사고 만이 남아 오늘의 사서류가 보존되었다.
선생의 대표적인 저서 중 대표적인 것은 오조실록일기·고려시지리지·고려사절요·동국통감·치평요람·명황계감·동국여지승람·팔도지리지·연변방술도·연변성자도·양계연변방술도·팔도지도(동국지도)·여연,무창,우예삼읍도·열성어제시·용비어천도·제주삼읍도·동문선·황국치평도·유선서·오륜록·삼강사략·의방류취·농잠서·축목서·손자주해·해동성씨록·동국도경·주의10권·시정기·삼강행실록 등이고 경국대전을 교정하였다.
문집으로 《눌재집(訥齋集)》이 있다.

대포서원(大浦書院) 사우(祠宇)는 원주를 세워 결구한 팔작(八作) 지붕의 익공건물(翼工建物)로서 다음과 같음.
-본사(本祠) 화국묘(華國廟) 본전(本殿)은 14.3평(47,27m²)
-내외삼문(內外三門) 각 5평(각 16,529m²)
-동, 서재(東, 西齋) 각 1등 주심포 맞배집 각 18평(m²)
-담장 : 215m²
-화장실 : 2,5평(8,264m²)